[생드니국제학교 졸업생 수기]최소현 2011년 1월1일 - 2011년 8월 31 불어연수 2011년 9월1일 - St-Denis 인텨내셔날 고등학교 입학(Loches-tours 지역) 2015년 6월 30일- 고등학교 졸업 자격 합격( Bacalaureat L. ) 2015년 9월 -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교 입학 2018년 6월 -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과 학사학위 취득(Licence 취득) 2018년 9월 - 파리 카톡릭 대학 에술사 +고고학 1학년 입학 올해로 벌써 프랑스 유학 5년 차가 되었다. 2012년 1월 1일, 만 15살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 한 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는 지구 반대쪽의 나라로 유학을 떠난 것이 어느 새 5년 전의 일인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인해 환경의 변화가 싫었으며, 공부에 관심도 없었고, 게다가 불어를 전혀 못 하는 상태에서 유학이라니.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금전적, 시간적 이유 때문에 그토록 원해도 하지 못 하는 유학이라는 기회가, 중학교 3학년, 어렸던 그 당시의 나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러한 나의 성격에 변화를 주고자 딱 3개월만 있어보고 그 이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건지, 아니면 프랑스에서 유학을 진지하게 계속해 나갈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의 그 말에 설득당했고, 그 때가 2011년 가을 쯤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갑작스레 결정된 나의 프랑스 유학은, 제대로 준비 할 틈도 없이 진행 됐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 3개월은 정말 힘들었다. 물론 홈스테이라던지 선생님들은 너무나 좋은 분들이셨지만,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은 나에게 정말로 크게 다가왔다. 가뜩이나 적극적이지 못했던 성격의 나로써는 누구에게도 잘 다가가지 못 하고, 설사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도 제대로 말 못하고 지내는, 다소 외로운 하루하루의 연속일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핸드폰도 없었으니 부모님이나 한국의 친구들과 제대로 연락하기도 힘들었었다. 하지만 그나마 같은 학교에 한국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나중에 그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말다툼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남몰래 혼자 방에서 울기도 했었지만... 하지만 거짓말같이 딱 3개월 째가 되니, 불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홈스테이에서 하는 말들, 길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 학교 안내방송에서 하는 말들, 영화 속에서의 대사들. 단어가 하나씩 하나씩 들리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말이 트이기 시작하고 이내 불어 실력이 급상승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불어가 재밌어졌다. 물론 당시 내 불어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괜히 좀 더 작문을 하고 싶고 불어로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3개월이 다가올때어머니가 나에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냐고 물어왔을 때, 나는 이 곳에 남아 좀더 배우고 싶다고 대답했다. 현재는 대학교 2학년, 그나마도 거의 학기가 끝나 여름 바캉스가 지나고 가을 새 학기가 시작되면 그 때는 대학교 3학년 졸업반이 돼있을 것이다. 지난 5년간 이 곳에서 생활하며 느낀 것은 많았다. 그 중 가장 큰 것을 꼽자면, 바로 내 성격이 바뀐 것이다. 나는 항상 말 수가 적고 낯을 심하게 가렸다. 수업 시간에 교실 구석 자리에 앉아서 말 한 마디도 안 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솔직히, 이랬던 내 성격을 바꾸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문화적 차이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성적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다들 다른 과를 고르고나니, 내가 속했던 문과에는 한국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 고작 불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밖에 안 지났는데 다른 프랑스인들과 불문학, 철학, 미술 수업을 듣고 이해하고 바칼로레아(Baccalauréat) 시험을 치룬다는 건 말도 안 됐다. 그러기에 내가 먼저 다가가야 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같이 공부를 할 같은 반의 현지인 친구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고, 친구들을 만들고, 고등학교 생활을 같이 보냈다. 그리고 프랑스 친구들과 지내면서 내 성격도 바꼈다. 전에는 잘 웃을 줄도 몰랐지만, 같이 웃고 대화하고 공부하며 더 사람에게 개방적으로 변했다. 물론 프랑스 친구들과 지내면서 불어 실력이 단기간에 정말 빨리 늘은 것도 사실이다. 2015년 여름,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시험이자 대학교 입학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를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하고 파리 북쪽에 위치한 파리 8대학교의 조형 예술과(Arts Plastiques)에 입학했다. 사실 일반 공립 대학은 바칼로레아 만으로도 입학이 가능해서, 아무 시험이나 면접 없이 미술을 배울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평생 미술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붓질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도 바칼로레아만 있으면 미술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보자르(Ecole des Beaux-Arts)같은 상위 미술 전문학교는 콩쿠르(필기 시험, 면접, 포트폴리오)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의 미대와 비슷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공립 대학교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예를 들어, 새내기 1학년 때 어느 실기 수업을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그림 실력이 영 꽝이었다. 마치 내가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노트 구석에 낙서하던 그 때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 했었다. 나 역시 제대로 미술을 배워본 적 없이 그저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다들 나보고 정말 잘 그린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교수님은 그런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시고, 우리가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어쩌면 그건, 대학교는 열린 곳이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것이니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올 필요는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또힌, 내가 다니는 파리 8대학은 다른 파리의 대학교(파리에는 1대학교에서 13대학교까지 있다)에 비해 예술 계열로 유명하고, 또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학교라 그런지 외국인 학생도 많이 온다. 간혹 보다보면 불어를 정말 못 하는 학생들도 보게 된다. 정말 심한 경우에는 어떻게 이 사람이 B2를 땄을까 진심으로 의문이 들 정도이다. 보통 그런 케이스는 유급하거나 1년만 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1~2학년 까지는 어떻게든 한다고 해도, 3학년 부터는 졸업 논문을 써야 하고 높은 수준의 수업을 따라잡아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힘든 것이다. 프랑스의 일반 공립 대학은 매년 학비가 400유로에서 학업 과정에 따라 600유로 사이 정도(대략 40만원에서 80만원)인데, 학비가 값싸다고 아무나 와서 아무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학교의 문은 열려있으나 졸업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들 흔히 프랑스 유학, 그것도 파리에서의 유학 생활을 생각하면 마냥 낭만적이고 멋지다고만 생각하며 동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첫번째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파리 8대학 이 위치한 Seine Saint Denis의 소도시, Pierrefitte만 봐도 백인보다는 흑인과 아랍계가 많으며 치안도 안 좋은 곳이다. 물론 이 곳 뿐만 아니라 파리도 치안이 결코 좋은 도시는 아니라서, 한국에서처럼 행동하다가는 바로 소매치기 당하고 말것이니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다녀야 한다. 게다가 파리는 집값도 비싸서 파리 내의 괜찮은 원룸은 최소 700유로에서 800유로 이상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하철 역 내에서는 난민들이 돈을 구걸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또한 인종차별의 문제도 있다. 물론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세계 어느 곳에나 있고, 서로 다른 '인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문제이다. 하지만 해외에서 살면서 한 번쯤은 이유 없는 부당함을 느낄 수도 있고 모욕적인 말을 들을 수도 있다. 부정적인 것만 말한 것 같지만, 오히려 이런저런 문화 차이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경험들 덕에 나는 정신적으로 성숙해졌고,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깨닫게 되었으며, 항상 우유부단하고 자기의사도 제대로 못 했던 예전과 달리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장하고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예전보다 독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말도 잘 안 통하는 해외에서 혼자 유학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독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다들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헤어 스타일을 하고, 밤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고 비슷비슷한 생활을 했다. 그것은 학교를 졸업하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다들 비슷비슷한 헤어 스타일과 패션, 유행을 쫓기 바쁘고, 어린 시절 나 역시 그랬었다. 누군가 유행에 뒤쳐지거나 했으면 무시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주 독특힌 스타일의 사람을 보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사람을 배척했다. 그러한 사고 방식은 사람에게 발전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 곳에 오면서 사람들은 태생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오히려 다른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나 역시 더 이상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게 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라는 자아도 강해진 것 같다. 전에는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아니에요'라며 부정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부정하지 않고 되려 감사하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감사하다는 말도 늘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해외에서는 감사하다는 말이 예의다. 식당에 가도 웨이터 분께 일일이 하나하나 감사하다 전하고, 일상 생활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작은 것에도 고맙다는 말을 꼭 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마주친,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꼭 인사를 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지도 모르는 사이지만 마지막에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인사를 한다. 솔직히 이런 생활을 하다가 방학 동안 한국에 돌아갈 때면, 가끔씩 서울은 정말 삭막하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러한 프랑스에서의 일상 생활과 학업은 정말로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라는 사람을 바꿔놓기도 했지만, 나의 인생 역시 바꿔놓았다. 물론 아직 대학 학사과정까지는1년 조금 더 넘게 남았고, 석사 과정까지는 3년 정도가 남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더 공부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쉽고 편하기만 한 길은 없고, 애초에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하는 데에 크고 작은 고생은 같이 오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남은 유학 생활도 열심히 후회 없이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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